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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물리학 이야기 + (2) 관리자작성일 14-07-14 13:13


물리학 이야기 (2) <현실의 법칙, 게임의 법칙>

물리학을 좋아했었는데 전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요즘 시간 나는 틈틈이 물리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교 물리학 과정을 ITunesU를 통해 독학으로 이수했다면 웃을 사람이 많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흥미를 끄는 공부를 하는 것은 정말로 취미 이상의 기쁨을 주는 것 같습니다. 게시판을 빌어서 제가 공부한 내용과 생각을 정리하여 올려 봅니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스푼 보이라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주인공 네오가 오라클의 집에 갔을 때, 거실에 앉아 스푼을 휘고 있던 까까머리 소년을 가리킵니다. "This is not real" 이것은 현실이 아니야. 스푼을 휘려고 하지마. 휘는 것은 바로 너야.... 그 아이는 이런 알 수 없는 말을 합니다. 내 마음을 달리하면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어떤 종교의 수행원리와 대충 비슷한 느낌이 납니다. 하지만 객관적 현상까지 그럴 수 있을까요? 내 눈에 휘게 보이는 숟가락이 다른 사람의 현실에서도 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을 휘게 한다고 숟가락이라는 객관적 개체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또 다른 이해하기 힘든 얘기를 합니다. 관찰자의 의식 또는 측정의 개입으로 불확정된 확률로 존재하던 어떤 일이 확정된 가능성 주변으로 수렴하는 현상이 원자보다 작은 세계에서 일어 나고 있으며 이를 파동함수붕괴라 한다! 아우…

정수 1과 2는 완전한 1과 완전한 2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real world)이라고 부르는 이 세상에는 정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똑 같은 것 2개가 있다면 가져와서 책상 위에 올려 보십시오. 젓가락 두 짝? 정말 완전하게 같은 2개일까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독립적인 덩어리라는 "개념"은 정확한 2라는 수를 의미하지만 그 둘은 현실적으로(물리적으로) 같지 않습니다. 길이도, 질량도, 부피도, 밀도도, 강도도 어느 것 하나 완전하게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의미의 “1+1=2”를 우리는 현실의 세계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개념의 세계"에 존재하고 이성으로 받아들이고 옳다고 판단할 뿐입니다. 플라톤은 이것을 이데아의 세계라고 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개념"이 우리가 아는 Reality(현실)로 구현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지 않았다’는 말이 여기서 확인 됩니다. 애니메이션 속의 공이 "통통" 튀고 있을 때, 그 공은 프로그래머가 정의한 수의 법칙(탄성, 속도, 질량, 마찰, 운동방정식)에 따라 "렌더링"(Rendering - 수로 정의된 계산을 풀어 그래픽이 되게 하는 과정)되어 유한한 픽셀의 화면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 메모리와 픽셀의 세계에서는 최소 분해능(해상도) 이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그 사이에 있거나 일어난다 하더라도 확정할 수 없고 단속적인 어떤 사건으로 "양자화"(덩어리)되어 나타날 뿐입니다. 이 디지털 세계에서는 느린 거북이는 앞서 달리더라도 반드시 아킬레스에게 따라 잡히는 것이 자명할 뿐만 아니라 제논의 역설은 본질적으로 논의의 가치를 잃습니다.

알루미늄박을 잘게 계속 잘라가면 원자에 이를 겁니다. 프톨레마이우스는 이것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현실의 경계라고 했습니다. 원자를 붕괴시키는 기술이 가능은 하지만 원자가 붕괴되면 물질의 성질을 잃어버려 알루미늄의 속성을 가지는 물질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의 경계라는 말은 맞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원자 이하로 더 내려가서 계속 미립자로 내려가면 결국 무엇이 남을까요? 제논의 역설에서는 “아킬레스가 빨리 따라가도 먼저 출발한 거북이가 어쨌든 조금 더 나가고 또 따라잡아도 조금 더 나가고 무한히 계속 가도 어쨌든 거북이는 아킬레스에 조금이라도 앞서가게 된다” 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습니다. 공간도 무한히 쪼개다 보면 마지막에 더 쪼개지지 않는 최소의 거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양자물리에서 "플랑크 스케일"이라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양자물리에서는 그 만큼 작은 수준으로 내려가 그렇게 작은 것을 보려면 요구되는 빛의 에너지는 그만한 크기의 블랙홀을 만들만한 에너지가 됩니다. 우리가 아주 작은 것을 현미경으로 볼 때, 아주 짧은 파장을 가진 빛의 도움으로 보고 있는데 빛에는 에너지가 수반되어 있지요. 플랑크 길이(Planck Length) 만큼 작은 것을 확정적으로 보려면 현실의 극한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래로 존재하지 않는 것(또는 불능)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불능의 조건이 우리 현실의 기저에 있다는 사실이 상상이 가십니까? 과학자들은 대개 억지보다는 확인 또는 확인할 수 없는 내용에 대해서 성실한 답을 내어 놓습니다. 그리고 '론'과 'Fact"를 확실히 구분하려 합니다.

참고 : "플랑크 스케일"이란 불확정성원리와 연결되는데 위치와 속도가 정확히 찾아지지 않는 자연의 본질적인 속성을 말합니다. 속도란 반드시 떨어진 두 점이 있어야 결정되는 양이고 위치는 한 점을 말하는데 무한히 무한히 작게 두 점을 좁혀서 거의 한 점 가까이 가는 것이 수학의 극한인데 물리적으로는 마지막에 플랑크 스케일에 걸려서 그 밑으로는 못내려 가는 겁니다. 수학의 극한은 수렴하는 것을 그렇게 믿기로 작정한 정의니까 현실의 밑바닥까지 가서 확인하지는 못한겁니다...그래서 두 점 사이에 중점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 있다는 것이고.....이걸 두고 우주가 디지털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은 “루트2” 라고 우리가 알고 있고 이것은 무리수입니다. 수의 본질적 개념으로 보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수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에서 정사각형의 대각을 보면 끝이 나있습니다. 대각선 끝 꼭지점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현실과 비현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최소의 길이가 있다면 무리수의 꼬리는 바로 그 정도 길이에서 끝이 날 것입니다. "플랑크 스케일"이 어쩌면 우리가 사는 현실의 분해능(해상도)이나 픽셀의 최소단위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가능하고 이로부터 디지털 우주론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현실이 가상현실이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컴퓨터 속의 가상현실처럼 무디고 엉성한 세계가 아니라 물리의 법칙이 굳건히 서 있는, 이름하여 "Reality" - It's so Real의 세계입니다. 만일 현실의 디테일이 의심이 간다면 무심코 산에 갔다 내려 오면서 아무 돌이나 뒤집어 보십시오. 평생 그 돌을 뒤집을 계획도 연유도 없을 것 같은 돌을 뒤집어 보십시오. 돌의 밑바닥의 디테일과 그 속에 기는 벌레들의 디테일을 본다면 이 현실이 얼마나 굳건하고 완전한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 속의 사물은 프로그래머가 영화의 목적을 위해 디테일을 구현한 데 까지만 "렌더링"되어 나타납니다. 인간이 만든 가상현실은 프로그래머가 작정하고 구현해 놓은 수준까지만 디테일이 있을 뿐, 게임의 흐름과 관련 없는 시도는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거나 흐지부지 다시 제자리고 돌아오고 맙니다. 13층이라고 하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등장인물에게 누군가가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실제가 아니고 프로그램 된 가상의 세계라고 말해주고 그것을 확인하려면 당신의 일생 동안 전혀 가볼 것 같지도 않고 관련도 없는 한 장소를 지도에서 정한 다음 그곳으로 가보라 합니다. 가다 보면 도로에 길 없음 표지가 나오더라도 무시하고 계속 가보라고 하지요. 그 등장인물은 그곳에 가봅니다. 그리고 무엇을 발견할까요? 그는 그곳에서 프로그램 되어 있지 않은 어떤 “무”의 공간과 직면하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공사중인 미완의 3차원 이미지 작업화면 같은 것으로 처리되어 나오는데 그곳은 바로 “무”의 공간으로서 등장인물에게 자신의 실존에 대한 회의를 심어주죠. 매트릭스도 비슷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로서 가상현실의 버그 같은 개념도 등장하지요.

우리가 현실(Real) 이라고 하는 이 세계에는 굳건한 물리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러한 법칙이 어떻게 처음 생겼는지는 사람들 마다 달리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있는 저는 “그”가 창조했다고 믿습니다. 인간이 가상 현실을 창조하듯이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으로 이 모든 것을 그가 창조했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현실이 지금과 같기 위해서는 우주-물리-화학-열역학 전반을 아우르는 상수들이 있어야 하고 현재의 값을 유지해야 합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지만 하나라도 틀어진다면 이 모습의 우주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굳건한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푼 보이가 했던 "Not Real"은 매트릭스 속의 존재들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매트릭스의 뭔가 이상함, 또는 엉성함을 발견한 사람들은 가상현실의 해커들이었고 매트릭스를 탈출하여 매트릭스를 초월한 능력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들은 Real World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이 현실 세계에도 초월을 꿈꾸며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만 다스려 수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해킹해서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물리와 수학을 좀더 깊이 공부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무당이나 점장이들은 현실 세계에 대한 해커들로 비유하고 싶습니다. 점장이 만나신 분이나 친지 중에 그 일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그런 데 의존하려는 사람들은 현실의 해커들을 찾아가 어둠의 경로와 백도어를 통해 얻은 정보를 가지고 반칙을 해 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과연 현실 법칙의 보안체계가 그렇게 허술할까? 토정비결에 얽힌 이야기를 보더라도 백도어나 해커적인 지식이 완전할 수도 그렇게 허락되지도 않는 다는 현실의 굳건함을 다시 발견해 봅니다. 물리학 얘기가 조금 사이비적으로 흘러 가는 감이 드네요. 이만 주제로 돌아 가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현실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게임의 법칙을 말하고 싶습니다. 딸 애와 포켓몬스터 게임을 하다가 이런저런 묘미가 있는 카드 룰이 있는 것을 알고 정말 놀랬습니다. 인생에도 카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판단과 길에서 벗어나는 지혜의 카드, 인내와 용기의 카드, 진심과 진정성의 카드… 인생의 정공법 카드들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비장의 카드도 있겠죠. 얼마 전 서울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시청로터리 근처에서 서울역으로 택시 타고 가는 길에 기사 분께 드라이브를 좀 시켜달랬더니 청와대랑, 삼각산 근처를 빙 둘렀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자택 근처도 돌았는데 기사의 말인 즉, 정주영 회장은 타계하기 전까지 손으로 돌리는 TV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주영 회장이 왜 크게 성공해서 하늘이 준 것 같은 부를 이루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비장의 카드를 가졌거나 찾았단 말인가?’ 제가 아는 정주영 회장은 점을 보거나 그런 데 의지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의지로 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쌀가게 점원으로 일할 때, 다른 점원들은 그렇고 그런 고만고만한 생각으로 하루하루 편히 배부르게 살 생각만 했다면 그 중에 단연 정주영은 다른 생각과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해변의 무수한 모래 가운데 단연 반짝이는 구슬 같은 뭔가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인생 게임의 법칙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위인전의 많은 인물들을 본다면 하나 같이 그들의 인생은 극적이었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헬렌 켈러는 내가 가진 카드는 왜 이것뿐이냐고 한탄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면초가의 상황과 희망이 모두 끊긴 상황에서 불굴의 의지와 도전 정신을 발하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과 탄식 속에 인간적 노력이나 포기, 심지어 생의 포기까지도 생각하는 못난 모습을 보일 상황에서도 저기 빛나는 출구와 끝판을 바라보며 멋진 게임을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좋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가장 성공할 만한 전공과 직업을 선택하고 잘먹고 잘사는데 부족함 없을 것 같은 집에 시집장가 보내는 일….이런 것은 어찌 보면 넓은 길이고 고만고만한 무수한 모래 같은 대다수 사람들이 추구하는 밋밋한 인생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런 인생의 과정에도 힘든 일 많고 고생도 나름 있겠지만 게임에 비유한다면 밤잠을 설치며 볼만한 중요한 경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아, 나한테 왜 이런 일이….’라고 말하지 않고 ‘야, 이번 판에는 카드 패가 좀 불리한 것 같네 하지만, 어떤 카드를 쓰고 어떻게 돌파할까? ‘분명히 이 상황에서도 헤쳐나갈 길은 있을 거야.

아우,,,, 물리학 얘기하려다. 인생 방정식 얘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을 공부하다 보니 현실의 법칙 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부분이 흘깃흘깃 보이기도 합니다. 양자역학은 이런 부분에 상당히 근접해 있는 학문이라고 말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마도 다음 번에 올릴 글에는 빛에 대한 얘기가 될 것 같군요. 초월적인 것에 대한 얘기에서 가장 먼저 제 머리에 떠 오르는 것이 빛입니다. 이 우주에서 빛은 가장 예외적이기도 초월적이기도 한 개체(entity)입니다. 그럼 다음 글을 기대하시고…